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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갑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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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12 Jul 2026 23:24: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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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김갑갑</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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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리학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대한철학회/ 성리학(형이상학)에 대한 현대인의 의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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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XL.jfif&quot; data-origin-width=&quot;426&quot; data-origin-height=&quot;6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N1aqP/dJMcacQekHd/I1XZk7qNBQ4tiREyoJk5F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N1aqP/dJMcacQekHd/I1XZk7qNBQ4tiREyoJk5F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N1aqP/dJMcacQekHd/I1XZk7qNBQ4tiREyoJk5F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N1aqP%2FdJMcacQekHd%2FI1XZk7qNBQ4tiREyoJk5F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26&quot; height=&quot;600&quot; data-filename=&quot;XL.jfif&quot; data-origin-width=&quot;426&quot; data-origin-height=&quot;6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현대의 철학이 실존주의 사조라면, 중세의 철학은 형이상학 사조이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리'라는 존재(혹은 개념)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이때의 진리란 이른바 철학 세계에서의 신 혹은 구세주와 같은 존재로서, 형이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은 유신론/무신론에 각각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신학은 중세 형이상학의 대표적인 분야이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amp;nbsp; 형이상학과 실존철학을 대립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까? 형이상(形以上, Metaphysics)이란 말뜻은 감각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근원적 원리나 진리라는 뜻으로, 세계를 형이상/형이하로 구분하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실존주의 철학은 감각 세계(실제 세계)가 곧 세계의 전부라고 여기며, 형이상적이거나 선험적인 영역은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따라서 형이상학의 반대자로는 형이하학이 아니라, 애초에 형이상/이하의 구분을 거부하는 철학사조인 실존철학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amp;nbsp; 성리학은 송나라 시기에 발생한 유학의 갈래로서, 신유학이라고도 불리운다. 초기 유학과 구별되는 성리학만의 특징으로는 리기(이기)론이 있는데, 리기론이란 우주만물의 운행을 각 사물의 재료가 되는 기氣와 그것을 주관하는 원리인 리(이)理로 나누어 이해하고 탐구하려는 철학이론이다. 세계를 본질-형상의 이원 구조로 이해하고, 논의의 궁극적 지향점을 본질세계로 삼는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 넓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과도 크게 닮아있다.&amp;nbsp;&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또한 성리학은 건국/통치 이념으로서 조선의 체제/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찬가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적 형이상학은 대大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등에 의해 받아들여져 그리스도교 신학(스콜라 철학)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하게 활용되었고, 그리스도교 신학은 곧 중세 서양 사회 전반을 지배하였다. 실로 형이상학은 동서를 막론하고 중세 사상체계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조선의 성리학은 리기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조선 성리학의 의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리기론의 주요 개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리는 이른바 만물을 주재하는 원리, 형이상학적 구분으로는 형이상자의 총체를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리는 플라톤의 이데아나 그리스도교 신학에서의 만선萬善의 근원이자 궁극의 선인 '신'과 거의 같은 위치에 있다고 이해된다. 기는 사람을 포함한 현실 만물의 재료, 혹은 감각적 실제이며 형이상학적 구분으로는 형이하자의 총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의 '질료'와 같다). 성리학은 신유학, 즉 유학의 한 갈래인 만큼 그 대전제인 성선설과 그에 기반한 인간 심리의 분석을 주요 과제로 삼는데, 이때의 '인간의 선한 본성'을 리기론에서는 리 그 자체 혹은 리와 매우 가까운 무언가로 이해한다. 형이상자인 리(=인간의 선한 본성)는 현실에 직접 작용할 수 없고 다만 형이하자인 기(='기'로서의 인간)를 움직임으로서 드러나는데, 기는 순선무악(純善無惡)한 리와 달리 가선가악(可善可惡)한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음으로써 각종 문제점이 발생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인간이 선한 본성(리)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마음과 행실이 일어날 수 있으며, 따라서 '리'적인 선한 본성을 제고하고 그밖의 '기'적인 요소를 리로써 제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리기론적 심성론의 주된 골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리기론의 심성이론은 놀라울 만큼 이데아론 및 스콜라 철학의 그것과 닮아있다. 세 철학사상 모두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선의지나 사유능력을 목적론의 주요 단서로 제시한다. 현실의 만물과 현상이 추구하고 회귀하여야 할 궁극적 근원의 이름은 다를지언정(리, 이데아, 신) 그것의 정의나 성질은 대단히 흡사하며, 그 근원을 포착할 수 있는 핵심 단서로 인간의 선한 의지나 사유능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일치를 보인다. 즉, 형이상학은 형이상자를 중심으로 한 &lt;u&gt;목적론적 세계관&lt;/u&gt;과, 인간의 심성으로 그 형이상자를 포착할 수 있다는 &lt;u&gt;단서적 인식론&lt;/u&gt;을 공통적인 핵심 특징으로 갖는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물론 세부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리기론의 단서적 심성은 유학에 뿌리를 둔 수오, 사양, 측은, 시비의 사단(四端)이며, 이데아론에서는 인간의 선의지뿐 아니라 변증법과 논리적 사고능력을 궁극체(이데아)로의 단서로 본다. 신학에서도 신앙, 이성(이는 신학자마다 다르다)을 제시하는 등, '인간의 심성에서 관찰되는 무언가'라는 공통점은 존재하지만 자세하게는 다른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점은 같은 학문 분야 내에서도 관찰된다. 리기론의 경우, 리와 기의 상호작용을 도식화하고 그것을 각종 현상(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현상이 사용되었다)에 적용하여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론이 전개되었는데, 그 리-기의 상호작용 도식에서도 학자 간의 의견차가 있었고 또한 각종 현상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논쟁이 발생하였다. 과거의 경전(특히 주희의 저서)을 근거삼아 중재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경전의 해석 자체를 놓고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 중 대표적인 논쟁이 이황과 기대승의 사칠논쟁(四七論爭)이다. 개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인간의 심성에는 지극히 선하고 천하의 도리에 합치하는 측면인 사단과 가선가악한 측면인 칠정이 존재한다. 앞선 형이상학적 구조에서 볼 때, 사단이 리'적(的)'인 측면이고 칠정이 기'적'인 측면임은 확실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리'적'/기'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가 쟁점으로 비화되었다. 이때 이황의 주장은 사단이 곧 리의 일부, 즉 순수한 리의 일종이라는 것이고, 기대승의 주장은 사단이나 칠정이나 모두 리기가 함께 있으나 요컨대 배합된 비율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앞서 설명한 리기의 개념에 따르면, 리는 원리일 뿐 직접 현상계에 드러날 수 없으므로 반드시 기를 움직임으로써만 실체화될 수 있는데, 이를 근거로 기대승은 이황이 말한 '사단은 곧 순수한 리'라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후 이 논쟁은 리기호발(리도 움직이고 기도 움직인다, 이황의 의견)과 리기공발(리와 기는 결합되어야만 움직인다, 기대승의 의견)이라는 두 학설을 낳았으며, 각 진영에서는 해당하는 학설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논증과 도식들을 제시하게 된다. 이는 조선 성리학의 주요 논쟁으로 자리잡았고, 본 책에서도 이를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지금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호발과 공발 중 무엇이 타당하냐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논쟁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형이상학적 도식의 검증은 물리&amp;middot;화학 실험이나 수학적 계산과 같이 현실에서 명증히 가/부결될 수 없어 결국 그 도식을 읽고 이해하는 학자 개인이 느끼는 인상이나 이른바 '타당성'을 준거로 해석된다. 특히 그것이 다루는 분야가 심리현상이나 감정적 반응과 같이 개개인의 개성에 영향을 받는 영역일 경우, 이를 일정한 도식으로 만들어 제시하는 것은 그 도식을 평가하는 학자 개인의 심리적 경향성과 기질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도식들 간의 불일치는 훗날 프로이트(J. Freud)로부터 시작된 근현대 심리학이라는 사례를 통해서도 반복된다. 성장 배경, 문화적 맥락, 신체적 차이 등에 의해 심리학자마다 제시하는 인간발달의 과정과 심리의 작동구조이론은 상이하였다. 결국 각각의 이론은 적어도 하나의 사례로서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이 완전히 보편화될 수는 없다는 한계를 동시에 가진다.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심성론의 도식은 당대부터도 '단일한 하나의 도식'으로 통일되지 못했고 여러 도식들이 병립하는 형국이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형이상학의 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형이상자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존재&lt;u&gt;라고 일컬어지지만&lt;/u&gt;, 오히려 그렇기에 현실의 인간, 형이하자의 세계에서는 완전히 포착될 수 없다. 즉, 존재 자체가 가설적인 개념인 것이다. &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그런데 그 가설의 근거는, 형이상학에 따르면 형이하의 불완전한 존재에게 의존한다.&lt;span&gt; &lt;/span&gt;&lt;/span&gt;예컨대 사람이 가진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이를 토대로 '궁극적 올바름'이라는 근원이 존재할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그 '궁극적 올바름'은 결국 사람이 느끼기에 올바른지, 사람의 도덕감정을 설득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준거로 이해된다. 이는 형이하자가 가진 형이상자의 단서가 형이상적 존재의 근거인 동시에, 형이상자의 존재가 형이하자가 가진 단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도 사용되는 꼴이다. 결국, 가설(형이상자의 존재)로 가설(형이하자의 단서성)을 증명하는 순환논리에 봉착하게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따라서 형이상학은 (1)이론의 검증이 개인의 감각과 해석에 근거하며, (2)형이상자의 존재가 가설적 설정에 의존함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즉, 형이상학적 세계관이란 엄밀한 검증이 불가능한 요해(了解)적 추론과 가설들로 이루어진 상상력의 세계관이며, 그 세계관이 제아무리 엄밀한 논증법을 거쳐 전개되거나 방대한 설정들에 기반한다고 하여도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라는 원초적 대전제가 가설적 설정에 의존하고 있기에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확신할 수 없다. 더구나, 가설적 설정으로부터 전개되는 논리인 이상,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설적 설정의 수만큼 다양한 형이상학 이론이 병립할 수 있다. 이에 조선의 성리학자나 스콜라 신학자들은 단일하고 보편적인 형이상적 세계관을 수립하기 위하여 사서오경이나 성서와 같은 과거의 권위있는 경전을 준거로 삼기도 하였지만 같은 경전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렸으며, 무엇보다 (경전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그 경전 또한 과거의 어느 사상가로부터 제시된 가설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어떤 형이상학적 세계관도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단일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그렇다면 형이상학은 무의미한 시도였는가? 그렇지 않다. 형이상학은 그 자체로 인류의 학문과 사상의 발전사에서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진리를 발견하려는 인간의 소망과 시도는 그 자체로 학문 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설령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더라도 그 탐구 과정에서 발견되고 수행된 논증의 기술과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후세대 문명의 비옥한 밑거름이 되었다. 마치 연금술사들이 납으로 금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그 시도와 실험 속에서 축적된 경험과 관찰들은 화학과 생물학의 모태가 된 것과 같다. 또한 형이상학적 사조의 사변성에 반발하며 현실지향적 사조가 출현함으로써 중세의 후기, 나아가 근대적 철학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형이상학적 학문사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세의 천명적 신분질서에 대한 회의가 홉스의(T. Hobbes) 리바이어던, 루소(J. Rousseau)의 사회계약론으로 대표되는 근대 서구의 현실주의적 사회론으로 이어졌고, 조선 성리학계에서도 리기론에 기반한 심성론적 우주론의 사변성에 대한 반발과 현실참여의 촉구를 기치로 조선 후기 정약용, 박제가와 같은 학자들에 의하여 실학사상이 대두되었음을 종합적으로 돌이켜 본다면, 형이상학이란 인류가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처음 사용하면서 마주치는 첫 번째 관문이자 사상사의 발전이 현실의 문제의식과 합치되어가기 위한 필수적 시행착오로서의 가치를 지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인간에게는 분명히 진리를 갈구하는 본성이 있다. 세계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우리가 느끼는 정의감, 미적 감각과 같은 지각 능력은 어떻게 발생되는가? 등등의, 자신의 정체와 세계의 섭리를 이해함으로써 더욱 완전해지고 지성 속에 들끓는 막연한 궁금증의 추동을 해소하려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많은 학자들을 탐구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 본능을 가진 이들이 자연과 우주를 직접 관측할 도구도, 뉴턴 경으로부터 시작된 수리물리학적 접근법도, 의학도 생물학도 없던 문명의 초기에 오직 상상력과 투철한 추론과정으로 쌓아올린 사상의 탑이 바로 형이상학인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학문이 단순히 실패하고 사변에 매몰된 과거의 버려진 잔해가 아니라, 인류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분투하였던 최초의 시도이자 문명과 학문의 발전사의 필수적인 시행착오로서 기억해야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 역시 자연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활동은 성리학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그 안에 우주의 섭리가 살아숨쉬는 허령지각한 신물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와 실체를 갖는, 자연이 유기물을 엮어 만든 일종의 기계장치와 그 작동현상이다. 우리가 형이상적 근원의 단서라 믿었던 각종 욕구와 감정은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수만 년의 진화생태를 거치면서 탑재한 생존본능의 일종이거나 그것들의 예기치 못한 파생물의 일종이었다. 자연사와 진화생태계에 있어서 인간이 절대적이라 믿었던 도덕적 가치조차 종種이 처한 진화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선택지의 일종일 뿐이었고, 천문과 물리는 인간의 직관과 믿음에 반하는 과학적 사실들을 끊임없이 들춰내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으며 대자연과 은하가 빛나는 우주 아래에서 앞에서 한없이 작은 미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형이상학이 꿈꾸던 인간 심성의 선험적이고 궁극적 근원은 거꾸로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대자연과 우주에 스스로를 감히 투영한 오만한 환각의 일종이 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오히려, 오늘날 형이상학이 물려준 가치는 이런 절망적인 진단에서부터 시작된다. 형이상학이 가리키던 신과 궁극의 근원은 선험적으로 인간의 외부세계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대신 바로 우리의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아무런 가치도 근원도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무가치하며 목적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가 현실 속에서 직접 가치를 부여하고 목적을 설정할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이상 어떤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원리가 있어 모든 것을 재단하고 정당화해주지 않으며, 그 대신 현실을 사는 우리가 직접 딜레마와 문제상황에서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 또한 직접 감당해야만 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형이상자에 예속되지 않는 자유를 얻었으나 동시에 그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실존철학이 말하는 삶의 자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사람이 어려서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예속되다가 청소년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독립을 시작하여 마침내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철학의 발전사 또한 초기에는 형이상학이라는 유토피아적 그늘 아래에서 전개되었다가(중세), 그 모순과 사변성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자연과학적 발견에 이르는 등 격동의 성장기를 겪었다(근대). 그리고 이제는, 형이상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와 책임으로 독립하는 실존적 철학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결국 현대문명의 성장기는 형이상으로 시작하여 형이하로 완성되었다. 하늘에서 인간으로, 신성에서 인간성으로, 본질에서 실존으로. 이것이 바로 인류의 사상과 철학이 수천 년간 걸어온 성장기요 현주소이다.&lt;/p&gt;</description>
      <author>김갑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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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9 Apr 2026 17:07: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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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논어-공자</title>
      <link>https://kimgabgab.tistory.com/5</link>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논어_입체북.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80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q2rhd/dJMcaibtbsG/umYs77gpLzHHexTZnkdjS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q2rhd/dJMcaibtbsG/umYs77gpLzHHexTZnkdjS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q2rhd/dJMcaibtbsG/umYs77gpLzHHexTZnkdjS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q2rhd%2FdJMcaibtbsG%2FumYs77gpLzHHexTZnkdjS1%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800&quot; height=&quot;800&quot; data-filename=&quot;논어_입체북.jpg&quot; data-origin-width=&quot;800&quot; data-origin-height=&quot;800&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책을 몇 권 꼽는다면 논어는 단연 그 중 하나일 것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현대 사회에서 유교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경직된 사상과 계급제도를 정당화하는 구시대적인 사상이라고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특히 19세기 말, 당시 조선의 폐쇄성에 성리학적 패러다임이 일부 원인을 제공한 탓에, 어떤 경우에는 개화를 가로막아 한국사의 치욕과 비극을 초래한 민족의 역사적 원수(怨讐)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하지만, 2천 년간 하나의 문화권을 지배한 고전의 뿌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읽을 가치가 있음 역시 틀림없다. 심지어, 아니 오히려, 유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진 경우일수록 정확한 비판을 위하여 또한 궁극적으로는 문제 상황을 극복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하여 유교라는 비판 대상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뿌리가 되는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공자의 본래 가르침과 통상 여겨지는 유교규범의 경직적 이미지 간에는 세밀하고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요컨대, 공자의 가르침은 훨씬 온건하다. 그렇게 느낀 부분들은 크게 두 가지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1. 윗사람을 존대하라고 하였지, 아랫사람을 하대하라고 한 적은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 우선, 공자가 윗사람(군주, 부모, 어른, 상관)을 지극히 공손하게 대할 것을 책 내내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윗사람들로 하여금 아랫사람에게도 철저히 예의를 다할 것을 함께 강조하며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특히 간(諫)언으로 대표되는 그의 충(忠) 의식은, 단순히 상명하복으로만 단순화할 수 없으며 훨씬 복합적이고 소통 가능한 상하관계를 제시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 &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定公&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問&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 &amp;ldquo;&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君使臣&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臣事君&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如之何&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amp;rdquo;&lt;/span&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GungSeo, serif; background-color: #ffffff; color: #9d9d9d; text-align: start;&quot;&gt;&lt;b&gt;&lt;/b&gt;&lt;/span&gt; &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span&gt;&amp;nbsp; 孔子&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對曰&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 &amp;ldquo;&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君使臣以禮&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臣事君以忠&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amp;rdquo;&lt;/span&gt; &amp;nbsp;&amp;nbsp;&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 &amp;nbsp;군주가 신하를 다스리고, 신하가 군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 &amp;nbsp;공자가 대답하길, 군주는 신하를 예로써 다스리고, 신하는 군주를 충심으로 섬겨야 합니다.&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 -八佾, 19&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공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는, 인(仁)에 기반한 사람들의 성숙한 상호작용에 기반한다. 즉, 수직적 관계나 상하관계에서조차도 존중과 존대를 항상 강조할 뿐, 복종과 하대에 대한 언급은 책 전체를 통틀어도 찾을 수 없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2. 군군신신부부자자, 신분질서의 확립의 의도.&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공자는&amp;nbsp; &quot;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quot;는 정명(正名)을 강조한다. 그는 계급질서의 확립을 추구하였는데, 이 때문에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억압이 공자의 사상으로 포장되곤 한다. 그러나 공자는 그런 목적으로 정명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모든 사상은 역사 &amp;middot; 사회적 배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당시 중국은 춘추 &amp;middot; 전국시대로 알려진 극히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국가체계가 붕괴하여 하극상과 쿠데타가 가장 큰 사회문제였던 시기이며, 이때 공자는 그 사회문제를 정명을 통해 비판한 것이다. 즉, 공자가 정명 사상을 제시한 목적은 '권력투쟁이 초래하는 사회질서 붕괴 방지'이지, '경직된 인간 관계'가 그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리고 이는 공자의 가르침 내부에서도 정합적으로 일치되지 않는다. 공자가 정명과 더불어 줄곧 강조하는 덕치(德治)와 예(禮) 사상을 떠올린다면, 공자가 상하관계에서 무조건적인 복종과 경직된 상명하복을 지지한다는 해석은 어폐가 있다. 아래의 구절들은, 정명 사상이 단순히 경직된 수직적 관계를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뒷받침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amp;nbsp; &amp;nbsp; &amp;nbsp;後生可畏&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焉知來者之不如今也&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四十&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五十而無聞焉&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斯亦不足畏也已&lt;/span&gt;&lt;/i&gt;&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amp;nbsp; &amp;nbsp; &amp;nbsp;젊은이들을 두려워할 만하니, 그들의 내일이 오늘 사람들을 따라오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lt;/span&gt;&lt;/i&gt;&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555555; text-align: start;&quot;&gt;&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子罕, 23&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 &amp;nbsp;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000000; text-align: justify;&quot;&gt;子謂仲弓曰 犁牛之子 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lt;/span&gt; &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 &amp;nbsp; ....농사짓는 소의 새끼가 털이 붉고 뿔이 단정하나, &lt;/i&gt;&lt;i&gt;사람들은 농사짓는 소를 제사로 바치지 않는다.&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 &amp;nbsp; 그러나 산천(즉 제사받는 주체)은 (농사짓는 소건 아니건) 신경쓰지 않는다.&amp;nbsp;&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 &amp;nbsp; &amp;nbsp;- 雍也, 4&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nbsp; &amp;nbsp; (필부의 자식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중용되어 마땅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처럼 공자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관용과 상호존중, 즉 인仁에 기반한 성숙한 관계를 지향했다. 이는 상위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단순한 상명하복 관계가 공자의 지향점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lt;br /&gt;&amp;nbsp;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며, 공자는 사회구조적으로는 엄격한 상하 구분을 강조하였다. 이 둘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이다. 즉, 인덕 있는 개인들이 스스로의 상관을 공경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계급질서가 철저히 유지되기를 바란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공자 사상의 핵심을 이룬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amp;nbsp; 역자 해제에 따르면, 결국 공자가 꿈꾼 사회체계는 엄격한 종법등급과 수직적 신분구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질서이다. 비록 사회구성원들의 도덕적이고 자발적인 동기로부터 그 질서가 유지되고 지속되기를 바랐으나, 어쨌거나 그는 신분구조의 절대성을 주장하였고 이는 유가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잡았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특히 그는 제례를 신분질서 수호 수단으로서 중시하였다. 부모의 3년상을 준수하도록 당부하였으며, 천자(왕)만이 집전할 수 있는 제례를 제후나 그 아래의 야망가가 사사로이 집전하는 모습을 종종 거론하며 비판하였다. 공자에게 있어서 제례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실현함으로써 신분질서에 대한 존중과 자신의 본분을 겸손하게 수용하는 예禮의 실천 그 자체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는 공자의 교육관과의 관계에서 정합적으로 드러난다. 책의 역자는, 공자를 사회체계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나 정치 이론가보다 교육학자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이 평가는 독자로서 충분히 잘 납득되는 바이다. 공자는 지배계급이 인仁과 예禮에 부합하는 모범(즉 군자君者로서의 위용)을 보임으로써 백성들을 교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처럼 인으로 교화된 사회 구성원들이 아래로는 도덕적 모범을 보이고 위로는 공경하여 신분질서가 자발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을 이상사회로 설정하였다. 즉 그는 교육이야말로 이상사회를 이룩할 수단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교육과 실천을 강조하였다. 이때 덕과 인의 구체적 실천이란 앞서 설명한 예법과 예절, 제례를 준수하는 것으로 달성된다. 그것을 준수하는 것은 공경과 도덕을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덕과 의를 다시 함양하는 습習의 활동인 것이다. 이는 향당鄕黨 편에서 묘사된 공자 본인의 행실에서 잘 드러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요약하자면, 그는 &lt;u&gt;신분질서가 자발적으로 유지되는 사회&lt;/u&gt;를 목표로 하였으며, 국가 전체가 인덕仁德으로 교화된다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교화의 핵심적 수단은 예법과 예절, 그리고 제례인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현대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는 군권(왕권)의 절대성을 지지하였으며, 공자와 더불어 유교의 양대 시조로 여겨지는 맹자의 주장과 달리 어떤 경우에도 역성혁명을 거부하는 등 계급체계와 종법등급을 절대고수하였기 때문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공자가 겪은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이해할 만하다. 오늘날에는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당시로서 잘못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인 노魯나라였는데, 그곳에는 하은주 시대의 문화적 유산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기도 했다. 그는 찬란했던 주周나라의 몰락 이후 혼란상태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런 그가 우러러볼 것은 과거 하은주 시대의 고귀했던 예악禮樂문화뿐이었으며, 마침 그러한 의례를 주관하는 선비계층(고대 중국에서 이 계층을 유儒 라 하였으며 이것이 유교의 어원이 되었다)이었던 계급적 배경 역시 그가 주나라의 성군치세와 그 유산인 예악 문화를 동경하게끔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체제의 안정' / '예악 문화의 확립'으로 혼란을 예방하고자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정적으로 공자가 35살 때에 노나라에 큰 변동이 발생하였는데, 사소한 계기로 권세가들 간의 극심한 갈등이 벌어져 왕이 축출되고 꼭두각시가 즉위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그는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고 뜻을 펼치기로 결심하였다고 전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공자의 사상은 형식주의와 엄격한 신분계급적 질서를 절대적인 전제이자 목적으로 삼는다는 한계를 지닌다. 비록 그의 사상은 민본주의와 인치仁治, 덕치德治를 핵심으로 두었으나 한편으로는 사회의 유연한 구조변화를 저해하고 스스로 경직&amp;middot;형식화되는 문제점의 씨앗을 안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유교는&amp;nbsp; 2천 년간 전제군주국의 체제 유지 이념으로 기용되면서 지나친 형식주의와 보수적 계급사회 이데올로기로 고착화되었고,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종법등급이나 신분질서가 무용하며 반대로 유용하고 역동적인 사회구조를 요구하는 현실에 적응하는 데에 거의 완전히 실패하여 심각한 태생적 문제와 한계점을 드러내게 되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오늘날의 우리는 공자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공자와 유교는 고대 중국의 사회상에서는 유용하였지만, 오늘의 사회에 적용하기에는 한계와 문제가 있다. 인덕과 개인적 수양을 강조하는 공자의 의지는 여전히 고전으로서 가치를 지니지만, 유교의 이상적 사회상은 오늘날 곧이곧대로 수용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우리가 그의 사상을 이해할 때에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였듯이, 유교를 오늘날에 이해할 때에도 오늘날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야 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따라서, 공자 사상은 인격 수양을 강조한 고전 인문서이기도 하지만, 고대 중국 난세 위정자(혹은 위정학자, 공자가 실제 위정자는 아니었으므로)의 사례집으로서도 이해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할 때에도 유교의 한계점으로 드러난 형식주의나 경직된 사회구조 자체에 매몰되기보다는, 당면했던 사회문제를 풀어나가는 공자의 도덕적 방향성, 그리고 혼돈을 예방하고자 분투했던 그의 고뇌를 폭넓게 이해하며 역사라는 위대한 시행착오의 일부이자 참고자료로서 이 책을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lt;/p&gt;</description>
      <author>김갑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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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Mar 2026 14:51:5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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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s282636999_3.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3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1vcmW/btsQMfLOa9P/m6VkhmKzDk2S4vC1dk6X3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1vcmW/btsQMfLOa9P/m6VkhmKzDk2S4vC1dk6X3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1vcmW/btsQMfLOa9P/m6VkhmKzDk2S4vC1dk6X3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1vcmW%2FbtsQMfLOa9P%2Fm6VkhmKzDk2S4vC1dk6X3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34&quot; data-filename=&quot;s282636999_3.jpg&quot; data-origin-width=&quot;500&quot; data-origin-height=&quot;73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1906~1962)은 나치의 독일 집권기와 세계 2차대전 시기 전반의 유대인 학살을 실무적으로 담당/지휘한 사람이다. 그 죄로 1962년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되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나 아렌트는 나치 집권기 독일로부터 미국으로 망명하여 생존한 유대인 사회학자&amp;middot;철학자이다. 이 책은 아렌트가 이스라엘에서 진행된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관찰한 바를 토대로 쓰였는데, 특히 1심 재판 과정을 위주로 다루었다. 거기서 아이히만은 Moshe Landau 재판장에 의해 진행된 재판에서 Robert Servatius의 변호를 받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재판에서는 수많은 법적 쟁점이 있었지만, 이 책에서 초점을 맞춘 쟁점은 법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주제였다. 검사는 아이히만을 성격파탄자나 매우 잔인한 미치광이임을 밝히고자 했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유명한 주제인 악의 평범성(The Vanality of evil)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끔찍한 일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여야 한다. 첫 번째는 &lt;u&gt;①나치스의 전략&lt;/u&gt;, 두 번째는 &lt;u&gt;②아이히만의 '무능함'&lt;/u&gt;이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①나치스의 전략&amp;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나치스는 초기에는 유대인을 학살한다고 하지는 않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물론 나중에 가서는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집어넣어 학살했지만, 그러면서도 '학살'내지는 '살해'라는 명칭이나 표현은 쓰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 사용한 명칭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격언이 있다. 생각의 한계는 곧 말의 한계이며, 말의 한계는 곧 생각의 한계인 것이다. 나치는 이 사실을 의식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교묘하게 잘 사용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나치스가 붙인 홀로코스트의 공식 명칭은 유대인의 '소개'(Evacuation, 疎開, 이곳에서 저곳으로 보내 버리다)였다. 그들은 이렇듯 생소한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했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소개'는 말 그대로, 유대인을 독일이나 독일의 점령지, 나아가서는 유럽 전체에서 내쫓는 작업이었다(직접 죽이는 것은 아니다). 이때 소개된 유대인들은, 그들이 원래 살던 국가의 국적을 포기함은 물론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명화 &lt;i&gt;&amp;lt;인생은 아름다워(1997)&amp;gt;&lt;/i&gt;를 보면, 귀도와 그 아들이 복잡한 절차 없이&amp;nbsp; 간단한 통보만으로 수용소행 열차에 올라탄다. 그들은 나치 집행관의 통보에 응하고 열차 탑승 대기열에 합류하는 순간, 자신의 국적과 법적 보호권을 포기함과 동시에 이주(추방) 절차에 동의한 셈이 된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해외여행을 한 번 떠나는 데에도 여권 발급이나 비자 신청 등 귀찮고 수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한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고 국외로 이주하는 과정이 별다른 행정절차 없이 그토록 간단하게 끝나는 것은 섬뜩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실제로도 그 절차는 너무나도 간단한 나머지 거의 평온해 보일 지경이어서, 당시의 유대인들 역시 자신이 무슨 절차에 따르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저 행렬에 순순히 동참했다고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amp;nbsp; 아이히만은 바로 이 행정절차를 설계&amp;middot;지휘한 사람이다. 책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만든 절차를 이렇게 설명했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quot;그(아이히만)는 '협동라인작업'을 고안해 냈다.&quot;&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quot;시작 부분에 첫 번째 서류가 제출되면&amp;nbsp;&amp;middot; &amp;middot; &amp;middot; &amp;middot; 마지막에는 완제품으로 여권이 생산되는 방식이다.&amp;nbsp;&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quot;신청자(유대인)는 이제 더 이상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필요가 없었고 &amp;middot; &amp;middot; &amp;middot; &amp;middot;단지 '당신은 2주일 안에 이 나라를 떠나야 합니다. 아니면 당신은 수용소로 보내집니다'라고 쓰인 여권만을 갖고 나오면 된다.&quot;&lt;/i&gt; (101~102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절차는 그의 핵심 업적이었고 따라서 죄목이었다. 그가 만약 이 절차를 개발하지 못했더라면, 홀로코스트의 진행은 적어도 더뎌졌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이 업적을 자랑스러워 한 것으로 보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는 홀로코스트의 본의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이 소개 작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나치가 유대인을 단순히 이주시킨다고만 생각하여 거기에 동참하였다. 심지어 그는 이때 어느 정도의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유럽에서의 반유대인 정서는 뿌리깊은 것이어서 당시에도 유럽사회 어디에서나 유대인들은 좋지 못한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면 서로 불편한 동거를 할 바에야 아예 따로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팔레스타인이나 마다가스카르(독일이 점령하고 있었다)로 유대인을 모조리 '소개'하여, 유대인들만의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는 계획에도 동참했다고 한다(아이히만은 이 계획을 자신이 최초로 발상했다고 주장하지만 허풍임이 틀림없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어쨌거나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대신 영국에 의해 이스라엘이 세워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알다시피, 소개된 유대인들의 행선지는 팔레스타인도 마다가스카르도 아닌 유럽 각지에 세워진 수용소가 되었고, 결국 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학살당한다. 그리고 나치가 처음에 유대인의 추방을 '소개'라고 불렀듯이, 이 과정도 학살이나 처형이 아닌 '최종 해결책'이라는 생소한 명칭으로 불렀다. 이것이 바로 나치스가 사용한 전략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amp;nbsp; &amp;lt;②아이히만의 '무능'&amp;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바로 여기서 아이히만의 '무능함'이 드러난다. 이 무능함은 실무자로서의 무능함이 아니다. 그는 실무자로서는 꽤 유능했다. 그러나 아렌트가 지적하는 무능이란 바로 '말하기의 무능'과 '생각하기의 무능'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1심 재판을 내내 관찰하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아이히만이, 문장을 구사할 때 자신이 살던 나치 독일에서 사용되던 상투어나 선전문구 아니고서는 단 한 구절도 말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예를 들자면, 홀로코스트 작업에 대해 증언할 때 '유대인을 추방시켰다/강제이주시켰다'거나 '수용소에서 유대인 다수를 가스로 처형하였다'고 말한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소개'라거나, '최종 해결책'을 사용하여 '유대인이 소개되었다', '수용소에서는 최종 해결책이 시행되었다'와 같이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나 의도를 설명하고자 할 때 독일에서 쓰이는 카드게임 용어를 사용하는 등(비유하자면 법정에서 피고가 증언할 때 고스톱 용어인 '똥을 쌌다', '광을 팔았다' 와같은 표현을 쓴 것이다. 그래서 판사가 아이히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전달이나 상황표현에 적절한 문장을 스스로 생각해내는 능력이 전무하였다고 아렌트는 지적한다.(105~106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의 무능은 생각의 무능을 낳았다.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quot;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amp;middot; &amp;middot; &amp;middot; &amp;middot; &amp;middot;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quot;&lt;/i&gt;(106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즉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무슨 일을 초래할지를 객관적으로 살필 능력이 없었다.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유대인의 소개' 과정을 생각해 보자. 조금만 고민해보면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신원보장이나 국적도 없이 추방된 유대인의 무리가 대체 유럽 어느 나라에서 받아들여진다는 말인가? 인도주의에 기반한 국제법과 협약이 자리잡은 오늘날에도 난민의 수용은 어느 나라에서나 골칫거리인데, 1차대전을 막 치른 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유럽땅에서 몇천 명도 아니고 수십~수백만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정처없이 추방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간접적인 학살이나 다름없다(심지어 그들은 난민도 아니고 기존 국적을 멀쩡히 가지고 있던, 법적으로 정상적인 각국 국민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모조리 수용소로 보내진 것은 정해진 것, 어쩌면(그리고 아마도) 나치에 의해 의도된 결말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이런 합리적 추론은, 나치에 의해 덮어씌워진 '소개'라느니, '최종 해결책'이라는 생소한 명칭들로 마비되었다. 과연 언어는 생각의 한계이며, 생각은 언어의 한계가 된다. 여기서 언어의 사용을 통제하는 것은 단순히 표현의 왜곡에 이르지 않고 생각의 왜곡과 불구화로 이어진다. 아이히만은 바로 이러한, 언어의 마비에 따른 생각의 마비를 잘 보여주는 끔찍한 예시가 되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언어와 생각은 순환적인 지지관계에 있다. 그러나 생각을 우리가 직접 다스리는 것은 힘들기에, 현실적으로 언어만이 우리의 생각을 형성할 수 잇는 유일한 수단이다. 바로 이처럼 언어의 사용을 중시한 것이 아렌트의 핵심적인 사상이기도 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생각을 의심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럴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상투어와 상투적인 생각이다. 별 생각 없이 답습되는 상투어는 그 자체로 우리의 생각 속에 돌처럼 눌러앉아, 유연한 사고를 저해하고 새로운 문장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우리가 문화생활 속에서, 친구관계 속에서, 시사뉴스를 접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사용하면서 답습하게 되는 상투어들과 상투적인 생각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들의 남용은 우리를 아이히만과 같이, &quot;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quot;(391p)로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역자 서문에서 소개된 한나 아렌트의 핵심주장을 끝으로 독후감을 마치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quot;말은 우리를 현실과 연결시켜준다. 나치스가 언어규칙을 만든 이유는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quot;&lt;/i&gt;(21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i&gt;&amp;nbsp;&quot;상투어나 관용어 등은 늘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특징을 갖는다. 현실-말-사유의 관계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언어가 고정되어 버림으로써 사유와 판단이 현실과 유리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quot;&lt;/i&gt;(22p)&lt;/p&gt;</description>
      <author>김갑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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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 Oct 2025 13:26: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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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옥중수고 정치편-그람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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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123.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79&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ZyNF8/btsQGWMPo58/20wDl1NFQ6z3HVDnjIl9G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ZyNF8/btsQGWMPo58/20wDl1NFQ6z3HVDnjIl9G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ZyNF8/btsQGWMPo58/20wDl1NFQ6z3HVDnjIl9G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ZyNF8%2FbtsQGWMPo58%2F20wDl1NFQ6z3HVDnjIl9G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58&quot; height=&quot;679&quot; data-filename=&quot;123.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79&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책은 말하자면 옴니버스식 사상서이다. 일정하고 명확한 하나의 주제 아래에서 차근차근 논리를 전개하는 긴 글이라기 보다는, 수많은 단상들을 엮어놓은 모음집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읽기 힘든 점도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그 단상들은 서로 완전히 무관한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나름의 시리즈를 이루는 에피소드들도 있는데, 나는 다음 두 개의 시리즈가 특히 기억에 남아 적어보려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 모든 여론과 세태는 일어날 만하여 일어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상황의 분석과 세력관계&amp;gt;, &amp;lt;대의제 통치체계에서의 수와 질&amp;gt;, &amp;lt;자생성과 의식적 지도&amp;gt; etc.&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요약하자면, 사회현상의 인과관계는 매우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그람시 당시의 사상가들은, 사회현상에도 자연현상처럼 인과관계가 존재함을 깨닫고 그 원인들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람시가 지적한 문제는 사상가들이 가진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가 매우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라는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예를 들자면, 프랑스 혁명은 그 발생 원인이 루이 16세의 실정과 극심한 경제난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20세기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은, 민중이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당시 상황을 보면서 혁명이 머잖아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기대하던 폭발적인 혁명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람시는 바로 이러한 인식을 비판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amp;lt;상황의 분석과 세력관계&amp;gt;에 위와 같은 주장이 실려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혁명은 단순히 민생이 파탄났다고 해서 자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민중 간(즉 혁명을 일으킬 계급 간) 충분한 혁명의식의 공유와 단결, 그리고 실제 위력이 갖춰져야 한다. 1789년 프랑스의 민생파탄은 이러한 궁극적 트리거에 이르는 하나의 사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원인의 일부였을 뿐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도, 경제난 이외에 부르주아들의 결집, 자유주의적 사상의 보급과 같은 원인들이 프랑스 혁명의 뒤에 숨어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오히려 단순한 민생의 파탄은 민중의 심리적 황폐화를 초래하여, 혁명과 같은 적극적 활동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단결은커녕 분열과 각자도생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1차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그람시가 겪은 그 이탈리아에서 관찰된 바이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기와 같이 지금의 이탈리아도 민중이 경제난을 겪고 있으므로 곧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단순히 기대하던 당시의 공산주의 세력의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그람시는 비판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와 비슷한 주장은 &amp;lt;대의제 통치체계에서의 수와 질&amp;gt;에서도 드러난다. 20세기 초의 유럽은 근대적 보편선거가(물론 여성 참정권과 같은 한계가 있었지만) 한창 시행되던 시기였다. 이때 '바보의 1표와 박사의 1표가 같은 가치를 지니는' 선거제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다(참으로 역사깊은 불만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 역시 인문현상의 인과성을 간과한 주장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람시에 따르면, &quot;개인의 판단은 온전히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것이 아니&quot;다. 그 개인이 처한 사회상, 계급의 처지, 그리고 그때의 여론의 형성과 개인 간의 의견교환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하층 노동자의 1표는 어느 무식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의중을 대변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그 계급의 여론을 인도한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 관련 정당의 노선/주장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표본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요약하자면 '모든 일은 일어날 만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amp;nbsp; 이 주장은 너무나도 당연한 주장같다. 그래서 '이런 초보적인 원칙을 왜 그람시가 굳이 강조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토록 당연한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 &lt;/span&gt;20세기 유럽의 기득권, 반동적 우파 계급은 급속도로 확산되는 공산주의 사상과 크고작은 민중/노동자의 저항을 기이한 재변이나 이른바 혹세무민의 준동 정도로 취급했다. 이들도 앞서 말한 당시의 혁명가들처럼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희망사항이나 편견에 따라 현상을 격하하고 무시하였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요구사항이 적힌 슬로건을 내거는 것을 보면서 '저것들이 또 귀찮고 바보같은 짓을 하는군' 하고 치부해버린 것이다. &amp;lt;자생성과 의식적 지도&amp;gt;와 이전 에피소드들을 보면, 당대의 정치가들이 종종 공산주의 등의 낯선 사상을 '자생적'으로 취급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취급의 뉘앙스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모를 기이한 전염병'을 대하는 태도와도 같아서, (오늘에도 흔히 볼 수 있는)염증이나 혐오와 흡사하다. 그람시는 바로 이러한 인식들을 어리석다고 지적하며, 세상에 완전히 자생적인 여론은 없다고 말한다. 더구나 이처럼 막대한 시류를 이루는 여론이라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이르는 기나긴 맥락의 누적과 사회적 여건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결코 발생할 수 없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amp;nbsp; 물론 이러한 반동적 격하는 부분적으로는 의도된 공격이거나 여론전의 일환일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이또한 여태껏 말한 바와 같이,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진 인식이다. 그러므로 사회연구와 저항운동은 그 이유들을 엄밀하게 밝혀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저항세력들은 반동세력의 행동을 단순한 악의나 습성의 일종으로 치부하지 않도록 늘 자가경계해야 하며, 앞으로도 발견하게 될 무수한 충격적인 사태와 여론들을 결코 자생적으로 취급하여 얕보지 말고 그 근본과 인과관계를 찾아낼 관찰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그람시의 호소이다. 무엇보다도 그람시 본인이, 파시즘이라는 기이한 현상을 단순한 기존 우익의 임시변통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결과를 혹독하게 맛보고 있었으므로, 그가 이런 주제에 공을 들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 정당이 해야할 일&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lt;선동과 선전&amp;gt;, &amp;lt;비잔티니즘에 대한 거부&amp;gt; etc.&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래서 정당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그람시의 실천적 대답이 이 에피소드들에 실려 있다. 흔히 &lt;i&gt;기동전&lt;/i&gt;과 &lt;i&gt;진지전&lt;/i&gt;으로 일컬어지는 그람시의 핵심적 사상과도 관련이 깊은 것 같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앞서 말하자면, 그람시는 정치사회의 근본적 구성단위가 정당이라고 이해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당이란,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당/공화당계 보수당(지금은 국민의힘)/그외 군소정당들과 같은, 정당법에 의해 설립된 엄밀하고 공식적인 정당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의미는 훨씬 포괄적이다. 즉, '지지세력을 두고 그들의 의지를 달성하기 위해 대표로서 활동하는 집단'을 모조리 일컫는다는 뜻이다. 그람시의 표현에 따르면, 국가(책에서는 이탈리아)의 정부조차도 가끔씩 일부 지배적 계층을 위해 활동하는 하나의 정당으로서 행동하기도 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람시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 구조에서 출발한다. 정치적 무능력이란 바로 이러한 정당의 무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모든 계층과 집단은 마땅한 정당(즉 대표할만한 기구)이 없이는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다. 그리고 그람시가 정당의 역할에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정당과 그 정당이 대표하는 집단 간의 적극적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지지집단과 대표집단 사이에서 중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식인 계층의 역할에 대한 강조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그람시는 PSI(이탈리아 공산당, 그람시의 이전 정당)의 부족한 실천력과 대중과의 상호작용의 부재로 인해 우익 반동 세력이 의회를 장악한 상황을 보면서&amp;nbsp; 정당들이 본래적 역할에 소홀하여 '(노동자)대중, 곧, 자신들이 대표하여야 할 계층과 유리되어, 단지 그 정당의 이름이 그 계층의 학명(學名)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태는 단지 의회정치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특히 당시의 대학과 관련하여 그람시는, '국가의 지적 수준을 대표하고 발전시켜야 할 대학교와 등등의 학술적 기구들은 현실로부터 유리됨으로써 수사적이고 비실용적인 무능함에 빠져버렸다'고 강력하게 지적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따라서 모든 집단은 본래적 정당역할, 즉 지지계층과의 &lt;u&gt;상호&lt;/u&gt;작용을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대학교든, 민간 기업이든, 지역사회의 주민 무임이든 마찬가지이다. 모든 집단은 스스로를 그 분야의 정당이자 구성원들의 대표로서의 역할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책무와 성원에 대한 상호작용에 충실할 때에야 비로소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발전과 승리를 항구할 수 있다.&lt;/p&gt;</description>
      <author>김갑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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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2 Sep 2025 14:27:3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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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부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주제들 외-그람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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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남부 문제에 대한-표지.jfif&quot; data-origin-width=&quot;178&quot; data-origin-height=&quot;28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qAHay/btsPFgeaia0/Q9qadkOiFHdB4KDxKHpAz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qAHay/btsPFgeaia0/Q9qadkOiFHdB4KDxKHpAz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qAHay/btsPFgeaia0/Q9qadkOiFHdB4KDxKHpAz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qAHay%2FbtsPFgeaia0%2FQ9qadkOiFHdB4KDxKHpAz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78&quot; height=&quot;283&quot; data-filename=&quot;남부 문제에 대한-표지.jfif&quot; data-origin-width=&quot;178&quot; data-origin-height=&quot;28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남부와 북부 간의 격차는 이탈리아의 오래된 국가적 문제이다. 1차산업 중심의 낙후된 남부와 2, 3차 산업 중심의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 사이에는 경제적인 격차뿐 아니라 차별 등의 인식적 격차도 존재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한국에도 영-호남 간의 지역 갈등이 존재하지만, 이탈리아의 남부 갈등은 그보다 훨씬 깊은 갈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역자 해제를 참고하면, 대한민국의 영-호남 갈등은 1900년대 군사정권의 정치적 전략으로서 어느정도 조장된 현상이며, 또 남한의 일부 지역 간의 갈등이다. 그러나 남북 문제는 이탈리아의 전국적인 갈등이며, 그 연원과 역사가 중세시대를 넘어 고대 로마의 형성과정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깊다. 또한 불과 1~2세기 전까지, 이탈리아는 통일 국가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 분열 양상에 중세 유럽 봉건제의 영향이 잔재해온 탓에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따라서&amp;nbsp;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람이 이탈리아의 극심한 남북 문제를 '지역갈등'으로서 충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그러나 이 책에서 나타난 그람시의 주장은 단순히 지역갈등의 한 사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람시는 궁극적으로 남부의 피지배 농민과 북부의 노동자계급이 하나로 연대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반 대중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연고로 복잡하게 분열되거나 얽혀있는 상황을 타파하려 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피억압 계층은 단일하지 않다. 같은 중~하류층, 피억압 계층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적대적 관계일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중, 사르데냐(남부 이탈리아)출신의 군인들이 토리노(북부 이탈리아)의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된 1917년 여름의 사건이 언급된다. 파병된 군인은 우연히 남부 출신의 토리노 주민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여기서 그러한 피억압자 간의 갈등이 잘 드러난다. 그 중 중요한 대목을 적어보겠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i&gt;(77p 중)&lt;/i&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주민(북부인): 당신들은 무슨 일로 이곳에 왔나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군인(남부인): 파업하고 있는 나리들에게 한 방 먹이러 왔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주민: 그런데 파업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인걸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군인: 여기서 그들은 모두 나리들이지요. 그들은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채 하루에 30리라(이탈리아 화폐 단위)를 법니다. 사사리(사르데냐의 한 지역)에는 진짜 가난뱅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농사꾼들'은 모두 가난하고, 하루에 겨우 1.5리라를 법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이 이야기는 사르데냐의 사회주의 정당 대회에서 발표된 일화이다. 그람시는 이 일화를 전하면서, 남부의 가난한 농민들이 북부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보다 반대로 꽤 적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피억압 계층 간의 분열'이 지속되고 심화될 경우, 남부의 빈농들이 이탈리아의 지배 세력(이들은 주로 북부에 있다)의 강력한 직/간접적 지지세력으로 변모하여 북부의 산업 노동자들의 혁명 시도가 고립될 것이라고 그람시는 크게 우려했다. 따라서 북부는 노동자 혁명 세력은 이러한 반목과 분열을 해소하고, 남북이 서로에 대해 가진 편견과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여 연대와 동맹의 손을 끊임없이 마주 내밀어야 한다고 책 전체를 통해 강력하게 호소한다.&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나는 이 일화가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또는 다른 비 이탈리아인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이탈리아의 남북 문제를 이해하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기는 어렵다. 물론 이 책을 쓴 사람 그람시는 실제로 남부 출신인 만큼, 남북 문제를 그 자체로도 중요한 역사/국가적인 과제로 생각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최종적 목표인 공산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해소되어야 할 (필수적인)중간 관문으로도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군인들의 초월적 연대를 진정한 공산주의 혁명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제시하였으며, 다른 모든 혁명 시도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할 황금률로 이해하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공산주의 혁명을 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개혁 시도가 성공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여론으로부터 적당한 지지를 받거나 적어도 적대당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만약 그람시가 목격한 사례처럼 편견과 분열로 인해 한 분야의 개혁적 움직임이 사회의 기득권/보수적 계층은 물론, 다른 분야의 개혁적/피억압 계층에게서도 외면받는다면 그 개혁은 성공하기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 연대 없는 개혁과 저항은 지속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피억압 계층 각자를 가두고 있는 좁은 세계관과 그로 인한 편견과 차별이라고 그람시는 말한다.&lt;/p&gt;</description>
      <author>김갑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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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 Aug 2025 18:38:1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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