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부와 북부 간의 격차는 이탈리아의 오래된 국가적 문제이다. 1차산업 중심의 낙후된 남부와 2, 3차 산업 중심의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 사이에는 경제적인 격차뿐 아니라 차별 등의 인식적 격차도 존재한다.
한국에도 영-호남 간의 지역 갈등이 존재하지만, 이탈리아의 남부 갈등은 그보다 훨씬 깊은 갈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역자 해제를 참고하면, 대한민국의 영-호남 갈등은 1900년대 군사정권의 정치적 전략으로서 어느정도 조장된 현상이며, 또 남한의 일부 지역 간의 갈등이다. 그러나 남북 문제는 이탈리아의 전국적인 갈등이며, 그 연원과 역사가 중세시대를 넘어 고대 로마의 형성과정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깊다. 또한 불과 1~2세기 전까지, 이탈리아는 통일 국가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 분열 양상에 중세 유럽 봉건제의 영향이 잔재해온 탓에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람이 이탈리아의 극심한 남북 문제를 '지역갈등'으로서 충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타난 그람시의 주장은 단순히 지역갈등의 한 사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람시는 궁극적으로 남부의 피지배 농민과 북부의 노동자계급이 하나로 연대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반 대중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연고로 복잡하게 분열되거나 얽혀있는 상황을 타파하려 하였다.
피억압 계층은 단일하지 않다. 같은 중~하류층, 피억압 계층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적대적 관계일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중, 사르데냐(남부 이탈리아)출신의 군인들이 토리노(북부 이탈리아)의 공장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파병된 1917년 여름의 사건이 언급된다. 파병된 군인은 우연히 남부 출신의 토리노 주민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여기서 그러한 피억압자 간의 갈등이 잘 드러난다. 그 중 중요한 대목을 적어보겠다.
(77p 중)
주민(북부인): 당신들은 무슨 일로 이곳에 왔나요?
군인(남부인): 파업하고 있는 나리들에게 한 방 먹이러 왔죠.
주민: 그런데 파업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인걸요.
군인: 여기서 그들은 모두 나리들이지요. 그들은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채 하루에 30리라(이탈리아 화폐 단위)를 법니다. 사사리(사르데냐의 한 지역)에는 진짜 가난뱅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농사꾼들'은 모두 가난하고, 하루에 겨우 1.5리라를 법니다!
이 이야기는 사르데냐의 사회주의 정당 대회에서 발표된 일화이다. 그람시는 이 일화를 전하면서, 남부의 가난한 농민들이 북부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보다 반대로 꽤 적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피억압 계층 간의 분열'이 지속되고 심화될 경우, 남부의 빈농들이 이탈리아의 지배 세력(이들은 주로 북부에 있다)의 강력한 직/간접적 지지세력으로 변모하여 북부의 산업 노동자들의 혁명 시도가 고립될 것이라고 그람시는 크게 우려했다. 따라서 북부는 노동자 혁명 세력은 이러한 반목과 분열을 해소하고, 남북이 서로에 대해 가진 편견과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여 연대와 동맹의 손을 끊임없이 마주 내밀어야 한다고 책 전체를 통해 강력하게 호소한다.
나는 이 일화가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또는 다른 비 이탈리아인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이탈리아의 남북 문제를 이해하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기는 어렵다. 물론 이 책을 쓴 사람 그람시는 실제로 남부 출신인 만큼, 남북 문제를 그 자체로도 중요한 역사/국가적인 과제로 생각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최종적 목표인 공산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해소되어야 할 (필수적인)중간 관문으로도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군인들의 초월적 연대를 진정한 공산주의 혁명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제시하였으며, 다른 모든 혁명 시도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할 황금률로 이해하였다.
공산주의 혁명을 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개혁 시도가 성공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여론으로부터 적당한 지지를 받거나 적어도 적대당하지는 않아야 할 텐데, 만약 그람시가 목격한 사례처럼 편견과 분열로 인해 한 분야의 개혁적 움직임이 사회의 기득권/보수적 계층은 물론, 다른 분야의 개혁적/피억압 계층에게서도 외면받는다면 그 개혁은 성공하기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연대 없는 개혁과 저항은 지속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피억압 계층 각자를 가두고 있는 좁은 세계관과 그로 인한 편견과 차별이라고 그람시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