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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대한철학회/ 성리학(형이상학)에 대한 현대인의 의견

김갑갑 2026. 4. 9. 17:07

  현대의 철학이 실존주의 사조라면, 중세의 철학은 형이상학 사조이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리'라는 존재(혹은 개념)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이때의 진리란 이른바 철학 세계에서의 신 혹은 구세주와 같은 존재로서, 형이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은 유신론/무신론에 각각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신학은 중세 형이상학의 대표적인 분야이다.

  형이상학과 실존철학을 대립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까? 형이상(形以上, Metaphysics)이란 말뜻은 감각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근원적 원리나 진리라는 뜻으로, 세계를 형이상/형이하로 구분하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실존주의 철학은 감각 세계(실제 세계)가 곧 세계의 전부라고 여기며, 형이상적이거나 선험적인 영역은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따라서 형이상학의 반대자로는 형이하학이 아니라, 애초에 형이상/이하의 구분을 거부하는 철학사조인 실존철학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성리학은 송나라 시기에 발생한 유학의 갈래로서, 신유학이라고도 불리운다. 초기 유학과 구별되는 성리학만의 특징으로는 리기(이기)론이 있는데, 리기론이란 우주만물의 운행을 각 사물의 재료가 되는 기氣와 그것을 주관하는 원리인 리(이)理로 나누어 이해하고 탐구하려는 철학이론이다. 세계를 본질-형상의 이원 구조로 이해하고, 논의의 궁극적 지향점을 본질세계로 삼는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 넓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과도 크게 닮아있다. 

  또한 성리학은 건국/통치 이념으로서 조선의 체제/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찬가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적 형이상학은 대大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등에 의해 받아들여져 그리스도교 신학(스콜라 철학)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하게 활용되었고, 그리스도교 신학은 곧 중세 서양 사회 전반을 지배하였다. 실로 형이상학은 동서를 막론하고 중세 사상체계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성리학은 리기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조선 성리학의 의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리기론의 주요 개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리는 이른바 만물을 주재하는 원리, 형이상학적 구분으로는 형이상자의 총체를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리는 플라톤의 이데아나 그리스도교 신학에서의 만선萬善의 근원이자 궁극의 선인 '신'과 거의 같은 위치에 있다고 이해된다. 기는 사람을 포함한 현실 만물의 재료, 혹은 감각적 실제이며 형이상학적 구분으로는 형이하자의 총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의 '질료'와 같다). 성리학은 신유학, 즉 유학의 한 갈래인 만큼 그 대전제인 성선설과 그에 기반한 인간 심리의 분석을 주요 과제로 삼는데, 이때의 '인간의 선한 본성'을 리기론에서는 리 그 자체 혹은 리와 매우 가까운 무언가로 이해한다. 형이상자인 리(=인간의 선한 본성)는 현실에 직접 작용할 수 없고 다만 형이하자인 기(='기'로서의 인간)를 움직임으로서 드러나는데, 기는 순선무악(純善無惡)한 리와 달리 가선가악(可善可惡)한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음으로써 각종 문제점이 발생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해 인간이 선한 본성(리)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마음과 행실이 일어날 수 있으며, 따라서 '리'적인 선한 본성을 제고하고 그밖의 '기'적인 요소를 리로써 제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리기론적 심성론의 주된 골자이다.

  리기론의 심성이론은 놀라울 만큼 이데아론 및 스콜라 철학의 그것과 닮아있다. 세 철학사상 모두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선의지나 사유능력을 목적론의 주요 단서로 제시한다. 현실의 만물과 현상이 추구하고 회귀하여야 할 궁극적 근원의 이름은 다를지언정(리, 이데아, 신) 그것의 정의나 성질은 대단히 흡사하며, 그 근원을 포착할 수 있는 핵심 단서로 인간의 선한 의지나 사유능력 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일치를 보인다. 즉, 형이상학은 형이상자를 중심으로 한 목적론적 세계관과, 인간의 심성으로 그 형이상자를 포착할 수 있다는 단서적 인식론을 공통적인 핵심 특징으로 갖는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리기론의 단서적 심성은 유학에 뿌리를 둔 수오, 사양, 측은, 시비의 사단(四端)이며, 이데아론에서는 인간의 선의지뿐 아니라 변증법과 논리적 사고능력을 궁극체(이데아)로의 단서로 본다. 신학에서도 신앙, 이성(이는 신학자마다 다르다)을 제시하는 등, '인간의 심성에서 관찰되는 무언가'라는 공통점은 존재하지만 자세하게는 다른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점은 같은 학문 분야 내에서도 관찰된다. 리기론의 경우, 리와 기의 상호작용을 도식화하고 그것을 각종 현상(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현상이 사용되었다)에 적용하여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론이 전개되었는데, 그 리-기의 상호작용 도식에서도 학자 간의 의견차가 있었고 또한 각종 현상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논쟁이 발생하였다. 과거의 경전(특히 주희의 저서)을 근거삼아 중재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경전의 해석 자체를 놓고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그 중 대표적인 논쟁이 이황과 기대승의 사칠논쟁(四七論爭)이다. 개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인간의 심성에는 지극히 선하고 천하의 도리에 합치하는 측면인 사단과 가선가악한 측면인 칠정이 존재한다. 앞선 형이상학적 구조에서 볼 때, 사단이 리'적(的)'인 측면이고 칠정이 기'적'인 측면임은 확실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리'적'/기'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가 쟁점으로 비화되었다. 이때 이황의 주장은 사단이 곧 리의 일부, 즉 순수한 리의 일종이라는 것이고, 기대승의 주장은 사단이나 칠정이나 모두 리기가 함께 있으나 요컨대 배합된 비율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한편 앞서 설명한 리기의 개념에 따르면, 리는 원리일 뿐 직접 현상계에 드러날 수 없으므로 반드시 기를 움직임으로써만 실체화될 수 있는데, 이를 근거로 기대승은 이황이 말한 '사단은 곧 순수한 리'라는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후 이 논쟁은 리기호발(리도 움직이고 기도 움직인다, 이황의 의견)과 리기공발(리와 기는 결합되어야만 움직인다, 기대승의 의견)이라는 두 학설을 낳았으며, 각 진영에서는 해당하는 학설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논증과 도식들을 제시하게 된다. 이는 조선 성리학의 주요 논쟁으로 자리잡았고, 본 책에서도 이를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지금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호발과 공발 중 무엇이 타당하냐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논쟁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형이상학적 도식의 검증은 물리·화학 실험이나 수학적 계산과 같이 현실에서 명증히 가/부결될 수 없어 결국 그 도식을 읽고 이해하는 학자 개인이 느끼는 인상이나 이른바 '타당성'을 준거로 해석된다. 특히 그것이 다루는 분야가 심리현상이나 감정적 반응과 같이 개개인의 개성에 영향을 받는 영역일 경우, 이를 일정한 도식으로 만들어 제시하는 것은 그 도식을 평가하는 학자 개인의 심리적 경향성과 기질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도식들 간의 불일치는 훗날 프로이트(J. Freud)로부터 시작된 근현대 심리학이라는 사례를 통해서도 반복된다. 성장 배경, 문화적 맥락, 신체적 차이 등에 의해 심리학자마다 제시하는 인간발달의 과정과 심리의 작동구조이론은 상이하였다. 결국 각각의 이론은 적어도 하나의 사례로서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것이 완전히 보편화될 수는 없다는 한계를 동시에 가진다.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 심성론의 도식은 당대부터도 '단일한 하나의 도식'으로 통일되지 못했고 여러 도식들이 병립하는 형국이었다. 

  형이상학의 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형이상자는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존재라고 일컬어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현실의 인간, 형이하자의 세계에서는 완전히 포착될 수 없다. 즉, 존재 자체가 가설적인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가설의 근거는, 형이상학에 따르면 형이하의 불완전한 존재에게 의존한다. 예컨대 사람이 가진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이를 토대로 '궁극적 올바름'이라는 근원이 존재할 것이라 추정한다. 그러나 그 '궁극적 올바름'은 결국 사람이 느끼기에 올바른지, 사람의 도덕감정을 설득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준거로 이해된다. 이는 형이하자가 가진 형이상자의 단서가 형이상적 존재의 근거인 동시에, 형이상자의 존재가 형이하자가 가진 단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도 사용되는 꼴이다. 결국, 가설(형이상자의 존재)로 가설(형이하자의 단서성)을 증명하는 순환논리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1)이론의 검증이 개인의 감각과 해석에 근거하며, (2)형이상자의 존재가 가설적 설정에 의존함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즉, 형이상학적 세계관이란 엄밀한 검증이 불가능한 요해(了解)적 추론과 가설들로 이루어진 상상력의 세계관이며, 그 세계관이 제아무리 엄밀한 논증법을 거쳐 전개되거나 방대한 설정들에 기반한다고 하여도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라는 원초적 대전제가 가설적 설정에 의존하고 있기에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확신할 수 없다. 더구나, 가설적 설정으로부터 전개되는 논리인 이상,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설적 설정의 수만큼 다양한 형이상학 이론이 병립할 수 있다. 이에 조선의 성리학자나 스콜라 신학자들은 단일하고 보편적인 형이상적 세계관을 수립하기 위하여 사서오경이나 성서와 같은 과거의 권위있는 경전을 준거로 삼기도 하였지만 같은 경전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렸으며, 무엇보다 (경전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그 경전 또한 과거의 어느 사상가로부터 제시된 가설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어떤 형이상학적 세계관도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단일하게'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은 무의미한 시도였는가? 그렇지 않다. 형이상학은 그 자체로 인류의 학문과 사상의 발전사에서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진리를 발견하려는 인간의 소망과 시도는 그 자체로 학문 발전의 원동력이 되며, 설령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더라도 그 탐구 과정에서 발견되고 수행된 논증의 기술과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후세대 문명의 비옥한 밑거름이 되었다. 마치 연금술사들이 납으로 금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그 시도와 실험 속에서 축적된 경험과 관찰들은 화학과 생물학의 모태가 된 것과 같다. 또한 형이상학적 사조의 사변성에 반발하며 현실지향적 사조가 출현함으로써 중세의 후기, 나아가 근대적 철학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형이상학적 학문사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세의 천명적 신분질서에 대한 회의가 홉스의(T. Hobbes) 리바이어던, 루소(J. Rousseau)의 사회계약론으로 대표되는 근대 서구의 현실주의적 사회론으로 이어졌고, 조선 성리학계에서도 리기론에 기반한 심성론적 우주론의 사변성에 대한 반발과 현실참여의 촉구를 기치로 조선 후기 정약용, 박제가와 같은 학자들에 의하여 실학사상이 대두되었음을 종합적으로 돌이켜 본다면, 형이상학이란 인류가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처음 사용하면서 마주치는 첫 번째 관문이자 사상사의 발전이 현실의 문제의식과 합치되어가기 위한 필수적 시행착오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인간에게는 분명히 진리를 갈구하는 본성이 있다. 세계는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우리가 느끼는 정의감, 미적 감각과 같은 지각 능력은 어떻게 발생되는가? 등등의, 자신의 정체와 세계의 섭리를 이해함으로써 더욱 완전해지고 지성 속에 들끓는 막연한 궁금증의 추동을 해소하려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많은 학자들을 탐구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 본능을 가진 이들이 자연과 우주를 직접 관측할 도구도, 뉴턴 경으로부터 시작된 수리물리학적 접근법도, 의학도 생물학도 없던 문명의 초기에 오직 상상력과 투철한 추론과정으로 쌓아올린 사상의 탑이 바로 형이상학인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학문이 단순히 실패하고 사변에 매몰된 과거의 버려진 잔해가 아니라, 인류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분투하였던 최초의 시도이자 문명과 학문의 발전사의 필수적인 시행착오로서 기억해야 한다.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 역시 자연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활동은 성리학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그 안에 우주의 섭리가 살아숨쉬는 허령지각한 신물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와 실체를 갖는, 자연이 유기물을 엮어 만든 일종의 기계장치와 그 작동현상이다. 우리가 형이상적 근원의 단서라 믿었던 각종 욕구와 감정은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수만 년의 진화생태를 거치면서 탑재한 생존본능의 일종이거나 그것들의 예기치 못한 파생물의 일종이었다. 자연사와 진화생태계에 있어서 인간이 절대적이라 믿었던 도덕적 가치조차 종種이 처한 진화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선택지의 일종일 뿐이었고, 천문과 물리는 인간의 직관과 믿음에 반하는 과학적 사실들을 끊임없이 들춰내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으며 대자연과 은하가 빛나는 우주 아래에서 앞에서 한없이 작은 미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형이상학이 꿈꾸던 인간 심성의 선험적이고 궁극적 근원은 거꾸로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대자연과 우주에 스스로를 감히 투영한 오만한 환각의 일종이 된다. 

  그러나 오히려, 오늘날 형이상학이 물려준 가치는 이런 절망적인 진단에서부터 시작된다. 형이상학이 가리키던 신과 궁극의 근원은 선험적으로 인간의 외부세계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대신 바로 우리의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아무런 가치도 근원도 부여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무가치하며 목적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가 현실 속에서 직접 가치를 부여하고 목적을 설정할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이상 어떤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원리가 있어 모든 것을 재단하고 정당화해주지 않으며, 그 대신 현실을 사는 우리가 직접 딜레마와 문제상황에서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 또한 직접 감당해야만 하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형이상자에 예속되지 않는 자유를 얻었으나 동시에 그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실존철학이 말하는 삶의 자세이다.

  사람이 어려서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예속되다가 청소년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독립을 시작하여 마침내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철학의 발전사 또한 초기에는 형이상학이라는 유토피아적 그늘 아래에서 전개되었다가(중세), 그 모순과 사변성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자연과학적 발견에 이르는 등 격동의 성장기를 겪었다(근대). 그리고 이제는, 형이상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와 책임으로 독립하는 실존적 철학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결국 현대문명의 성장기는 형이상으로 시작하여 형이하로 완성되었다. 하늘에서 인간으로, 신성에서 인간성으로, 본질에서 실존으로. 이것이 바로 인류의 사상과 철학이 수천 년간 걸어온 성장기요 현주소이다.